일회용이니까 품질 기준이 낮을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단순하게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의료기기 사출 현장에 들어가 보니, 오히려 그 반대였습니다. 일회용이기 때문에 더 철저하게, 그리고 더 집요하게 관리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의료기기 사출성형이었습니다.수지 선택"어떤 수지를 쓰느냐"가 곧 제품의 안전성을 결정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료기기에 쓰이는 플라스틱 수지는 그냥 싸고 성형하기 쉬운 것을 골라서는 절대 안 됩니다. 환자의 몸에 직접 닿거나 체액이 통과하는 부품에 쓰이는 소재인 만큼, 생체적합성과 내화학성이 기본 전제입니다.현장에서 가장 많이 접한 수지는 PVC(폴리염화비닐)와 PP(폴리프로필렌)였습니다. PVC는 투명도가 높아 IV백이나 혈액백처럼 내용물을 육안으로 확인해야..
처음 사출성형 공장에 발을 들였을 때가 생각납니다, 눈앞의 기계에 들어가는 재료가 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이거 넣고 돌려"가 전부였습니다. 기계 매뉴얼을 뒤지고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하나씩 알아갔는데, 그게 바로 플라스틱 수지였습니다. 지금은 후배들에게 "수지부터 알아야 한다"라고 잔소리처럼 강조하는 아저씨가 되었습니다.우리 주변에 이미 있는 수지 종류솔직히 처음에는 수지 이름이 그냥 알파벳 조합처럼 보였습니다. ABS, PP, PC, TPU... 외우는 게 목적인 줄 알았는데, 직접 현장에서 다뤄보니 이름 뒤에 각각의 성격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집 안을 둘러보면 이 수지들이 다 보입니다.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외관에 손을 대보면 단단하고 표면이 매끄럽습니다. 이게 ABS(아크릴로니..
플라스틱이 금속보다 강할 수 있다는 말, 믿기 어려우시죠? PEEK(폴리에테르에테르케톤)는 250°C 이상의 고온에서도 형태가 유지되는 소재입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냥 플라스틱이겠거니 했다가 손에 쥐어보고 나서 이런 플라스틱을 사출성형 해보다니 그 느낌은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무게는 가벼운데 두드려보면 금속 같은 밀도가 느껴지거든요.내열성과 기계적 강도, 실제로 만져보면 다르다PEEK는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Super Engineering Plastic)의 대표 소재입니다. 여기서 슈퍼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이란, 일반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보다 훨씬 높은 온도와 하중 조건에서도 물성이 유지되는 고기능성 고분자 재료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일반 플라스틱이 버티지 못하는 극한 환경에서도 쓸 수 있는 소..
작은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 '엔프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게 뭔지 전혀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의 일본식 줄임말이더군요. 현장에서는 워낙 당연하게 쓰이는 말이라 모르면 대화 자체가 안 될 정도입니다. ABS만 다루던 제가 처음 PC 작업을 맡았을 때, 그 두려움은 지금도 생생합니다.엔지니어링 플라스틱 5종의 물성, 숫자로 따져보면엔지니어링 플라스틱(Engineering Plastics)이란 범용 플라스틱보다 기계적 강도와 내열성이 뛰어난 고분자 재료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내열성이란 단순히 열에 잘 안 녹는다는 뜻이 아니라, 100도씨 이상의 환경에서 장기간 형태와 강도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금속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물성을 갖춘 고분자라고도 정의하는데..
남편들이 분리수거를 그렇게 열심히 해왔는데, 실질 재활용률이 고작 9%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솔직히 허탈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의 에너지 기업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전라북도 정읍의 공장 앞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다시 석유로 되돌리는 기술, 대한민국이 그 열쇠를 먼저 깎아 만들어냈습니다.우리가 몰랐던 플라스틱 위기의 진짜 민낯저는 제조업 현장에서 일하면서 폐플라스틱을 꽤 가까이 봐왔습니다. 공장에서 나오는 산업용 폐플라스틱은 원재료 종류가 명확히 구분되어 나오고, 오염도 거의 없다 보니 돈을 받고 매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고철이나 구리, 알루미늄처럼 서로 경쟁적으로 모아서 파는 분위기죠. 그런데 우리가 매..
상상도 안됩니다. 전 세계에서 매년 발생하는 플라스틱 폐기물은 약 3억 5천만 톤이라니, 저는 플라스틱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한 해에만 수백 톤의 플라스틱 원료를 다루는데, 이 숫자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멍했습니다. 우리 회사 하나만 해도 이 정도인데, 전 세계의 합산이라니.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이 막대한 양이 결국 어디로 흘러가는지, 데이터를 보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국제거래, 바다 오염의 진짜 원인일까부유국이 가난한 나라로 플라스틱 폐기물을 떠넘기고, 그것이 바다를 오염시킨다는 시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저도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편입니다. 그런데 실제 수치를 들여다보면 구도가 조금 다릅니다.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 중 국경을 넘어 거래되는 양은 약 500만 톤으로, 전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