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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기계 사양을 검토할 때마다 엑셀 파일을 뒤적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그 파일을 AI로 학습시켜 핸드폰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계량거리 환산 프로그램으로 바꿔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빨리 됐고, 현장 반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 있습니다. 플라스틱 성형 업계 전체가 AI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과연 무엇이 먼저 바뀌어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동화의 한계, 그리고 자율실행 AI가 다른 점
플라스틱 제조 현장에서 시뮬레이션 기반 작업절차(simulation workflow)를 쓰는 팀이라면 이미 스크립트나 매크로, 템플릿 같은 자동화 도구를 쓰고 있을 겁니다. 여기서 시뮬레이션 기반 작업절차란, 금형 냉각 해석이나 소재 변형 예측처럼 수치 해석 결과를 기반으로 설계 결정을 내리는 일련의 과정을 말합니다. 저도 현장에서 단순 반복 업무를 줄이려고 간단한 프로그램을 몇 가지 만들어 써봤는데, 확실히 좁게 정해진 문제에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형상이 조금만 바뀌거나 소재가 달라지면 그 자동화 스크립트가 바로 오류를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매번 수작업으로 재설정해야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팀에 걸쳐 스크립트가 제각각 쌓이다 보니 유지관리도 엉망이 됩니다. 결국 엔지니어가 결과를 해석하는 시간보다 시뮬레이션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지점에서 자율실행 AI(agentic AI)가 기존 자동화와 다른 역할을 합니다. 자율실행 AI란, 단순히 명령을 실행하는 수준을 넘어 엔지니어링 의도를 스스로 해석하고, 조건이 바뀌어도 작업절차를 스스로 조정하며 실행하는 AI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매번 재설정 없이도 설계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대응하는 협업자입니다.
실제로 2025년 주요 엔지니어링 전문기업 대상 설문조사에서 대규모로 높은 수준의 AI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은 단 3%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출처: 플라스틱코리아). AI 도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달리,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는 여전히 극소수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숫자가 그냥 통계가 아니라, 현장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고 봅니다.
소재 복잡성과 시뮬레이션 정확도
플라스틱 시뮬레이션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은 소재 자체의 복잡한 거동입니다. 엘라스토머나 유연 플라스틱은 초탄성(hyperelastic) 소재 모델을 필요로 합니다. 초탄성 모델이란, 고무처럼 크게 늘어났다 돌아오는 비선형 변형을 수학적으로 정확히 표현하기 위한 구성모델(constitutive model)입니다. 구성모델이란 소재가 외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수식으로 정의한 것인데, 이걸 잘못 설정하면 시뮬레이션 결과 자체가 신뢰를 잃습니다.
많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탄소성(elastoplastic) 거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탄소성이란, 일정 하중까지는 탄성처럼 원래 형태로 돌아오다가 그 이상이 되면 영구 변형이 남는 특성을 말합니다. 이런 소재를 제대로 설정하려면 정확한 응력-변형률 데이터와 경험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자율실행 AI가 이 설정 과정을 일관되게 지원한다면, 경험이 부족한 엔지니어도 훨씬 신뢰도 높은 해석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실제로 가장 기대되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존 스크립트 자동화: 좁은 범위의 반복 작업에는 효과적이나, 조건 변화에 취약
- 자율실행 AI: 엔지니어링 의도를 해석하고 조건이 바뀌어도 작업절차를 스스로 조정
- 초탄성·탄소성 소재 모델 설정: 경험이 없으면 오류가 나기 쉬운 고난도 작업
- AI 지원 시 소재 설정 일관성 확보 → 해석 신뢰도 향상 가능
협업 없이는 AI도 없다, 현장에서 느낀 것
AI를 잘 쓰면 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AI가 아무리 뛰어나도, 집어넣는 정보가 부실하면 결과도 부실합니다. 플라스틱 성형 공정에서 정확한 시뮬레이션을 돌리려면 금형 설계 데이터, 소재 물성치, 사출 공정 조건, 품질 이력이 모두 갖춰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 정보가 사출 업체 한 곳에 전부 모이는 일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출 업체에만 정보를 맡기고 뒷짐 지던 시대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고 저는 봅니다. 금형, 개발, 사출, 품질 담당이 각자 가진 정보를 모아야 비로소 AI가 쓸 수 있는 데이터가 됩니다. 더 나아가면 원료 업체의 소재 데이터까지 같이 공유해야 합니다. 어느 한 곳의 정보라도 빠지면 시뮬레이션 결과의 신뢰성은 떨어집니다. 정보를 서로 미루던 방식이 이제는 정보를 함께 모아야만 하는 구조로 바뀐 셈입니다.
이 변화가 가능하려면 데이터 관리 방식도 달라져야 합니다. 시뮬레이션 데이터가 연결되지 않은 도구와 저장소에 흩어져 있으면, AI가 이전 결과를 활용해 일관된 작업절차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단일기준 정보(source of truth)라는 개념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단일기준 정보란, 팀 전체가 동일한 데이터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중앙에서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하나의 정보 원본을 말합니다. 이것이 갖춰져야 AI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출처: SimScale).
AI가 실제로 플라스틱 엔지니어링에서 가치를 낸다는 시각도 있고, 아직은 시뮬레이션 현장에서 크게 와닿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도 솔직히 말하면 성형 업무에서 아직은 체감이 크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AI가 신뢰할 수 있는 협업자로 기능하려면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자율실행 AI가 어떤 가정을 적용했는지, 어떤 경계조건(boundary condition)을 설정했는지 엔지니어가 직접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계조건이란, 시뮬레이션에서 해석 대상의 외부 환경이나 구속 조건을 수치로 정의한 것으로, 이것이 잘못 설정되면 아무리 좋은 AI도 틀린 답을 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작은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어 현장에 적용하는 것도 결국은 정보를 어떻게 넣느냐에 따라 쓸모가 갈립니다. 큰 시스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AI는 또 하나의 협업자이지,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중소 사출 업체에서 AI 시뮬레이션을 도입하는 게 현실적인가요?
A. 단독으로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봅니다. 소재 물성 데이터, 금형 설계 정보, 공정 이력 등이 한 곳에 모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기업이 정보를 먼저 취합하고, 협력사와 공유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중소 업체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자율실행 AI와 기존 자동화 스크립트는 어떻게 다른가요?
A. 기존 스크립트는 조건이 조금만 바뀌어도 오류가 생기거나 수작업 재설정이 필요합니다. 반면 자율실행 AI는 설계 의도를 해석해 변화된 조건에 맞게 작업절차를 스스로 조정합니다. 다만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기보다는, 현장 상황에 따라 병행해서 쓰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Q. 플라스틱 시뮬레이션에서 소재 모델 설정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A. 소재 모델이 잘못 설정되면 아무리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돌려도 실제 거동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특히 탄소성(elastoplastic)이나 초탄성(hyperelastic) 거동을 보이는 폴리머는 정확한 응력-변형률 데이터와 적절한 구성모델 선택이 필수입니다. 이 부분을 AI가 보조해준다면 경험 부족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AI를 도입하면 엔지니어 역할이 줄어드나요?
A. 그렇게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AI는 시뮬레이션 준비와 반복 설정 작업을 맡고, 엔지니어는 결과 해석과 설계 판단에 더 집중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입니다. 판단과 검증의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고, AI는 그 판단을 더 빠르고 넓게 할 수 있도록 돕는 협업자 역할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AI가 플라스틱 성형 분야에서 실질적인 경쟁력이 되려면 기술보다 협업이 먼저입니다. 제 경험상 간단한 현장 프로그램 하나도 정보를 어떻게 넣느냐가 전부였습니다. 금형, 개발, 사출, 품질, 원료 업체가 정보를 함께 모아 단일기준 정보(source of truth)를 만들고, 그 위에서 자율실행 AI가 작동할 때 비로소 더 빠른 개발과 더 확신 있는 의사결정이 가능해집니다.
아직 성형 현장에서 AI가 크게 와닿지 않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렇지만 눈앞으로 다가온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회사든 개인이든 앞으로의 경쟁력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준비를 미루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plastic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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