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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출성형 현장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조건 하나 바꿀 때마다 머릿속에서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습니다. 바이오 베이스 플라스틱이나 탄소섬유강화 플라스틱(CFRP) 같은 신소재가 들어오면 그 부담은 몇 배가 됐습니다. 그런데 머신러닝이 그 암호를 대신 풀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을 때, 솔직히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데이터가 없으면 데이터를 만든다 — 데이터 합성의 발상
머신러닝 얘기가 나오면 현장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습니다. "데이터가 없는데 어떻게 씁니까?" 저도 똑같이 물었습니다. 신소재일수록 축적된 실험 데이터가 없고, 있어도 포맷이 제각각이라 쓸 수가 없습니다.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교(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CWRU)의 João Maia 교수 연구팀도 이 벽에 먼저 부딪혔습니다. 폴리에틸렌의 제올라이트(zeolite) 기반 화학적 재활용 공정을 개발하면서, ML 모델을 돌릴 만한 실험 데이터 자체가 없었던 겁니다. 여기서 제올라이트란 알루미늄·실리콘·산소로 이루어진 미세 다공성 결정질 광물로, 흡착 능력이 뛰어나 촉매로 자주 쓰이는 소재입니다.
해결책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데이터를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소산입자동역학(Dissipative Particle Dynamics, DPD)이라는 중간 규모 수치 모델링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여기서 DPD란 분자 수준의 복잡한 거동을 메조스케일에서 시뮬레이션하는 기법으로, 쉽게 말해 실험 없이 컴퓨터 안에서 분자의 움직임을 재현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합성해 낸 데이터가 기존 소량의 실험 데이터와 일치했을 때, 저는 그 발상 자체가 정말 영리하다고 느꼈습니다.
폴리머 사슬을 제올라이트 안에 넣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분자량이 어떻게 변하는지, 결합이 어떻게 끊어지는지를 시뮬레이션으로 관찰한 것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수십 번 조건을 바꿔가며 시행착오를 겪었던 그 과정을, 컴퓨터가 수만 번 대신 해주는 셈입니다. 이 방향이 맞다면 신소재 개발의 속도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 ML 모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가 부족할 때, DPD 시뮬레이션으로 합성 데이터를 생성해 이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 합성 데이터는 반드시 소량의 실제 실험 데이터와 대조·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 제올라이트 공극 크기, 유동력, 분자량 분포 등이 최적화 핵심 변수로 밝혀졌습니다
- 실험 결과 압출기 내 약 50%의 중량 손실을 얻었으며, 폴리에틸렌의 연속적 화학적 재활용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설정값이 아닌 실제값 — 공정 제어에서 배운 뼈아픈 교훈
압출 공정을 한 번이라도 다뤄보셨다면 이 답답함을 아실 겁니다. 스크류 회전 속도, 온도 프로파일, 원료 피딩 속도, 분자량… 변수가 서로 얽혀 있어서 하나 건드리면 다른 쪽이 틀어집니다. 게다가 재활용 PE처럼 공급원료의 품질이 배치마다 다르면 그 불안정성은 더 커집니다. 저도 비슷한 상황에서 작업자마다 결과가 달라지는 경험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Maia 교수 연구팀은 신경망(neural network)을 활용한 실시간 제어 시스템을 개발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신경망이란 인간의 뇌 구조에서 착안한 알고리즘으로, 입력 데이터를 여러 층에서 처리해 복잡한 패턴을 스스로 학습하는 기술입니다. 재활용 PE를 활용한 블로운 필름 생산에 적용해, 재활용 원료 함량이 18%든 20%든 공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런데 초기에 팀이 저질렀던 실수가 제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처음엔 설정온도 데이터로 모델을 훈련시켰다는 것입니다. 안정 상태에서는 예측이 맞는 것처럼 보였지만, 과도적 상태 — 즉 공정이 변하는 구간 — 에서는 완전히 어긋났습니다. 기계에 입력된 목표값과 실제로 측정된 온도는 다릅니다. 이건 제가 현장에서도 늘 강조하던 부분입니다. 기계 부품 교체 전에 공정 설정값이 올바른지 먼저 확인하는 것, 원인의 근본을 파악하는 것이 수익성 보호의 첫 번째입니다.
실제 측정온도로 데이터를 바꾸자 결과는 극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압출기 내 압력과 온도 예측이 거의 완벽하게 일치했습니다. AI도 결국 "올바른 데이터를 먹어야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점에서,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 교훈은 AI 도입을 검토하는 어떤 공장에서도 가장 먼저 새겨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출처: 플라스틱코리아).
화학적 재활용의 한계, 그리고 머신러닝이 채울 수 있는 빈틈
전 세계가 생산하는 플라스틱량은 2023년 이미 4억 톤을 넘었고, 2050년에는 12억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 숫자 앞에서 재활용 이야기를 꺼내면 으레 "화학적 재활용이 답 아닌가요?"라는 말이 나옵니다. 저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Maia 교수의 시각은 꽤 직접적입니다. 미국 인디애나에 2억 달러를 들여 지은 화학적 재활용 공장이 연간 10톤을 처리하는 반면, 한 해 생산되는 PE(폴리에틸렌)만 1억 6천만 톤입니다. 규모의 간극이 너무 큽니다. 빈 우유병을 전국에서 모아 수천 킬로미터를 운반해 700~800°C로 가열하고 대량의 화학물질을 투입해 결국 휘발유에 가까운 물질을 얻는다면, 에너지 수지가 맞는지부터 의문입니다.
반면 기계적 재활용(mechanical recycling)은 상대적으로 에너지 효율적입니다. 기계적 재활용이란 플라스틱을 분쇄·용융·재성형하는 방식으로, 화학 반응 없이 물리적으로만 처리하는 재활용 방법입니다. 비용과 에너지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재활용된 원료의 품질 저하가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재활용할수록 물성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머신러닝이 진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 — 이미 결과가 알려진 데이터로 알고리즘을 훈련시켜 예측하는 방식 — 을 통해 재활용 공정과 배합 제형을 동시에 최적화하면, 기계적 재활용의 품질 한계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가 직접 써봤다고 말하기엔 아직 이르지만, 제 경험상 공정 변수 하나를 제대로 잡으면 품질 편차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경우를 봐왔습니다. AI가 그 변수 조합을 실시간으로 잡아준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024년 전 세계 제조업 내 AI 시장은 약 50억 달러 규모였고, 2030년에는 5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포장 산업만 해도 AI 투자가 현재 약 30억 달러에서 2030년 약 300억 달러로 10배 성장이 예상됩니다(출처: 플라스틱코리아). 이 흐름에서 플라스틱 산업이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플라스틱 공정에 머신러닝을 적용하려면 데이터가 얼마나 있어야 하나요?
A. 이것이 현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입니다.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면, CWRU 연구팀처럼 DPD 시뮬레이션으로 합성 데이터를 만드는 방법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핵심은 합성 데이터라도 소량의 실제 실험 데이터와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입니다. 데이터의 양보다 질과 포맷의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Q. 사출성형이나 압출 공정에서 AI가 실제로 공정 조건을 자동으로 바꿔주나요?
A. 신경망(neural network) 기반 제어 시스템을 활용하면 실시간으로 설정값을 조정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다만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설정온도가 아닌 실제 측정온도처럼 올바른 데이터를 먹여야 합니다. 잘못된 데이터로 훈련된 모델은 안정 상태에선 맞는 것처럼 보여도 공정이 변화하는 과도 구간에서 틀어집니다.
Q. 화학적 재활용과 기계적 재활용 중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가요?
A. 규모와 에너지 효율 면에서는 기계적 재활용이 현실적입니다. 다만 품질 저하 문제가 고질적입니다. 화학적 재활용은 분자 수준의 순환이라는 잠재력은 있지만, 현재 규모와 비용의 벽이 큽니다. 어느 한쪽이 완전한 답이 아니라, 머신러닝이 두 방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향이 지금으로선 가장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지도 학습과 비지도 학습, 플라스틱 공정에서 어떤 걸 써야 하나요?
A. 무엇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지 아직 모를 때, 즉 변수 간 인과관계가 불분명할 때는 지도 학습(supervised learning)이 적합합니다. 이미 결과가 알려진 데이터로 모델을 훈련시켜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여러 공장의 데이터를 한꺼번에 모아 패턴을 찾고 싶을 때는 비지도 학습(unsupervised learning)이 유용합니다. 차원 축소(dimensionality reduction)를 통해 복잡한 공정 데이터를 구조화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결론
바둑을 배우는 학생들이 이제 AI와 대국을 두며 실력을 키운다고 합니다. 머신러닝도 그런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적이 아니라, 머리 좋은 동료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수십 년 쌓아온 감각과 경험이 AI에게는 학습 데이터가 되고, AI가 찾아낸 최적 조건은 다시 제 판단을 날카롭게 만들어줍니다.
플라스틱 산업은 신소재, 재활용, 공정 안정화라는 세 가지 숙제를 동시에 안고 있습니다. 머신러닝은 이 세 가지 모두에서 이미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대규모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진 공정 데이터를 정돈하고 올바른 포맷으로 쌓는 것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AI는 그렇게 정돈된 데이터를 먹고 자라며, 종국에는 더욱 정교한 공정 최적화로 돌아옵니다. AI와 함께 나아가려면, AI와 같이 학습해야 합니다.
참고: https://www.plastic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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