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PP 수지는 쉬운듯 하면서 어렵습니다. 결정성 수지는 비결정성 수지보다 성형 수축률이 3~5배가량 큽니다. 처음 이 수치를 접했을 때 저도 "그게 그렇게 차이가 난다고?" 싶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PP와 ABS를 번갈아 다뤄보고 나서야 그 차이가 숫자 이상이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원재료의 특성을 모르면 성형 조건을 잡는 것 자체가 막막해집니다.

결정화도가 수축과 물성을 결정한다
PP나 PA처럼 결정성 수지를 다룰 때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개념이 결정화도(crystallinity)입니다. 결정화도란 수지 내에서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 영역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의미합니다. HDPE는 결정화도가 약 90%에 달하는 반면, PA6는 약 20%, PA66는 30~35% 수준으로 같은 결정성 수지라도 그 비율이 제각각입니다.
이 결정화도가 왜 중요하냐고요? 바로 냉각 속도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고, 그게 곧 수축률과 물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식히면 분자가 규칙적으로 정렬할 시간이 생겨 결정화가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부피가 줄어드는 결정 수축이 열 수축에 더해집니다. 반대로 급랭을 시키면 결정이 충분히 형성되기 전에 고화가 이루어져 수축률이 작아집니다.
PET 수지의 페트병 제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냉각 속도를 빠르게 해서 결정화를 억제하면 투명한 콜드 파리손(예비 성형체)을 만들 수 있고, 이를 2축 연신(延伸)시켜 최종 병 형태로 성형합니다. 여기서 2축 연신이란 가로·세로 두 방향으로 동시에 늘려 강도와 투명성을 높이는 공정을 가리킵니다. 제가 직접 다뤄본 PP의 경우, 금형 온도를 조금만 올려도 수축값이 확연히 달라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조건을 잘못 잡으면 제품이 금형에서 나오자마자 뒤틀리거나 치수 편차가 커져서, 특히 공차가 타이트한 공업 부품에서는 낭패를 보기 쉽습니다.
성형 조건 설정 시 결정화도에 영향을 주는 핵심 변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수지 온도(가열 통 설정 온도): 결정성 수지는 융점(Tm) 부근에서 융해열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열 통 후부 온도를 충분히 올려주는 것이 미가소나 색 얼룩을 막는 데 효과적입니다.
- 금형 온도: 금형 온도가 높을수록 결정화가 잘 진행되어 밀도와 강성이 올라가지만, 내충격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나일론(PA)이나 폴리아세탈(POM)처럼 결정화를 충분히 진행시켜야 재료 본연의 특성이 나오는 수지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 냉각 시간: 냉각 시간이 짧을수록 결정화도가 낮아져 수축은 줄지만, 배향성이 커져 방향에 따른 수축 불균형으로 뒤틀림이 생기기 쉽습니다.
플라스틱 성형품의 치수 불량이 전체 불량의 약 25%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있는데(출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이 수지 수축 문제와 직결됩니다. 결국 결정화도를 이해하는 게 치수 불량을 줄이는 첫걸음입니다.
PP와 ABS, 손으로 만져봐야 차이가 보인다
"결정성이니 비결정성이니 그게 현장에서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감히 말씀드립니다. 그 차이를 손으로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조건 설정 실력은 분명히 다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PP(폴리프로필렌)는 녹은 상태에서 마치 아이들 장난감 슬라임처럼 늘어나면서 달라붙는 느낌입니다. 장갑에도 눌어붙고, 맨손에 닿으면 잘 떨어지지 않아서 화상 위험이 있을 정도입니다. 안쪽까지 완전히 굳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사출 시간이 길어지고, 조건을 느슨하게 잡으면 버(flash, 금형 파팅 라인이나 게이트 주변으로 수지가 흘러넘쳐 굳은 것)가 심하게 발생합니다. 버란 쉽게 말해 제품 가장자리로 얇게 밀려 나온 수지 찌꺼기인데, 한번 잡혀 나오기 시작하면 조건 재조정에 시간을 꽤 쏟게 됩니다.
반면 ABS(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공중합체)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쫀득한 젤리 같은 질감인데 PP에 비해 굳는 속도가 훨씬 빠릅니다. 비결정성 수지(amorphous resin)는 분자가 불규칙하게 엉켜 있어 서서히 결정이 형성되는 과정 없이 고화가 이루어집니다. 여기서 비결정성 수지란 냉각 시 분자가 무질서하게 고화되는 수지로, 명확한 융점 없이 유리전이온도(Tg) 부근에서 점진적으로 굳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급격한 수축 변화는 적지만, 점도가 높아 충전이 어렵고 잔류 응력이 남기 쉽습니다. 제 경험상 ABS는 금형 온도와 사출 압력, 속도를 충분히 높여주지 않으면 외관 불량, 특히 웰드라인이나 미충전 문제가 바로 나타납니다.
또 한 가지, 비결정성 수지는 수분의 영향을 크게 받아 실버스트리크(silver streak)가 발생하기 쉽습니다. 실버스트리크란 성형품 표면에 은색 줄기처럼 나타나는 불량으로, 수지 내 수분이 사출 시 고온에서 기화하며 표면에 흔적을 남긴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는데, 건조 공정을 대충 넘겼다가 ABS 외관 부품 전량을 재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투명 ABS 계열 제품이었는데 실버스트리크가 수십 개씩 나오는 걸 보고 나서는 건조 단계를 절대 허투루 보지 않게 됐습니다.
소성 가공 관련 국제 표준을 관리하는 ISO에서도 사출 성형 조건 관리의 중요성을 별도 규격으로 다루고 있을 만큼(출처: ISO), 수지 특성에 맞는 조건 설정은 현장에서 기본 중의 기본으로 통합니다.
결국 결정성이냐 비결정성이냐에 따라 성형 불량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 결정성 수지(PP, PA, POM, PBT 등): 수축률이 크고 치수 불량·뒤틀림 발생 빈도 높음, 저점도라 버 발생 주의
- 비결정성 수지(ABS, PC 등): 고점도라 충전 불량·잔류 응력 발생 가능, 수분 관리 소홀 시 실버스트리크 급증
원재료가 손끝에서 어떻게 느껴지는지, 어떻게 흘러가고 어떻게 굳는지를 몸으로 알고 있는 것과 이론으로만 아는 것은 조건을 잡는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에서 이 두 수지의 차이를 대충 넘기는 경우를 지금도 종종 봅니다. 수지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면 온도 설정 하나, 냉각 시간 하나가 왜 그렇게 잡혀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됩니다. 그 납득이 쌓여야 불량 원인을 빠르게 찾을 수 있고, 조건 재설정도 감 잡고 할 수 있게 됩니다. 아직 두 수지를 손으로 직접 만져보지 않은 분이라면, 다음번 작업 때 꼭 한 번 느껴보시길 권합니다. 그 한 번의 감각이 이론 열 페이지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참고: 사출 성형 불량 대책 사례집